빌에게 추천하는 책
빌에게 추천하는 책
[감상] 다윈의 대답 /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 피터 싱어 지음
얼마전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세계 제일의 갑부 빌 게이츠가 새로운 자본주의의 개념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창조적 자본주의". 세상에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이가 지금의 자본주의에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개념을 주창했다니 놀랄 수 밖에 없지 않나?
마치 최불암이 산을 하나 오르고서는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했다는 쌍팔년대 유머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 자신은 철저히 현 자본주의의 틈새에서 실리콘 벨리의 은총과 세례를 받아 그 자리에 까지 올랐음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니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265658.html
(빌 게이츠 “현 자본주의, 인간 이타성 무시”)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265547.html
(빌 게이츠 “가난한 사람 돕는 창조적 자본주의” 주창)
기사의 요지는 빌 아저씨 가라사대, 현재의 자본주의는 너무 부자들만이 독식해 먹는 문제가 있으므로 가난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는 것이다. 어디엔가 모르게 풍겨져 나오는 가진자의 거만함이 살짝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냥 넘어가 보자.
그는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생각의 단초를 찾았다고 하며, '기부를 뛰어넘어, 기업이 고급 인재를 빈곤구제 문제에 배치하고, 정부는 인센티브로 지원' 하자고 하는 등의 대책까지 내어 놓았다. (솔직히 세계 제1의 부자가 내어 놓은 대책치고는 좀스럽지 않은가..!)
아무튼 골자는 두가지 삐딱한 시선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겠는데, 첫째로 자본주의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나 착취해 먹으면 나중에는 착취할 대상 자체가 사라지니깐 적절히 먹여가며 착취하자. 는 것과 둘째로 정말로 못 사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도와주고자 한다. 는 것이 될 수 있겠다.
썰이 길었다
아무튼 타인의 호의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좋지 않으므로, 여기서 그치더라도 한가지 문제는 남는다.
'인간의 이타성? 자본주의에서 가능하긴 한 소리야?'
그래서 나는 빌에게 케케묵은 아담의 책 대신에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것이다. 단초를 찾았으면 실천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지 않겠는가. 한번 인간의 이타성이 실현 될 수나 있는 것인지 알아나 보자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피터 싱어는 위 질문에 관해 "그런게 있다"라고 주장한다. 문화에 관해서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그러한 성향 -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성역할이라든지, 사회적 존재라는 점 등을 예로 든다.
세 번째 범주는 여러 문화들 사이에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는 행동 유형들의 경우이다. 나는 여기에 우리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집어넣고 싶다. 여기서 사회적이란 말의 의미는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잇는 어떤 특정한 사회 형태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예컨대 오랑우탄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화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것으로 친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들 수 있다. p.64
그럼 변하는 인간의 본성도 있다는 건가? 있다. 문화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본성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핵심이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이러한 인간의 행동들을 구분하는 것에 어떠한 가치판단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무지한 것도 문제이며, 무시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거다.
왜? 빌 아저씨를 끌어들이며 인간 본성 이야기를 꺼내려는 걸까? 그것은 여태껏 내로라는 경제학자들도 이러한 문제에 관해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색채를 띈 사람들은 더욱! 물론 여기에서 빌 아저씨가 좌파니 아니니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 하다. 왜냐면 이 책에 정의된 대로라면 그는 이미 좌파적 마인드가 짙거든.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약자와 빈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착취 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들이 느끼는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주저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 만일 세상이 원래 그렇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든지, 혹은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좌파일 수 없다. 좌파는 이러한 상황에서 뭔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p20
전통적인 좌파=사회주의 도식은 일단 잊어버린다면, 저자의 설명이 그다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 빌 아저씨도 뭔가 하고자 하는 것 같고 말이다.
빌 당신의 능력을 보여봐
그래서 어쩌라고? 물어 보신다면, 한마디로 "할 때 잘하자"고 하겠다. 인센티브지급이니, 고급 인재를 지원하느니, 이상한 대책을 내어 놓지 말고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면, "잘" 하라는 거다.
저자의 주장으로 유추해 볼 때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 결정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혹은 좌시하고) 제도만 고쳐서 혁명을 시도한 것에서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러한 존재가 아닌데, 제도(유물론적 상부구조)만 고쳐서 인간의 본성이 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뭔가 멋진 제안을 하려고 하지만, 사실 그러지는 못하고 대략의 방향만 제시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즉 일상적인 의미에서 이타주의라는 개념은 행위자의 의식적인 동기와 기대에 비추어 이해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타인을 돕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렇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구별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뭔가를 바라지 않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보상해준다. 그 이유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해를 희생하려는 태도를 사회적으로 진작시키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더 큰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행위들이 갖는 가치는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p.99
사실 책에서 이 다음 부분에 "부유층의 과시 소비를 이타성으로 바꾸는 방법은 없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냥 스킵한다. 워낙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어쨌든 인간의 본성에 기초해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생산해 내야 한다는 거다.
덧 없는 결론
그래서 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성 발현을 위한 아이디어를 착안해 낼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덧없는 것은 과연 내 생각을 그가 동의해 줄지가 의문이고, 다음으로는 어떻게 이 제안을 그에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라는 멋진 제안을.
아무튼 저자가 내리는 몇 가지 명쾌한 '다윈주의 좌파'의 행동지침을 소개하면서 썰을 마친다.
다윈주의 좌파는
= 인간의 본성을 부정해서도,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무한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된다.
= 정치적 혁명에 의해서든,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든 혹은 보다 나은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혹은 사회적 조건들로부터만 기인한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일부는 이들로부터 유래했겠지만 모든 경우에 그럴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정책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증거들을 바탕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식의 추론을 거부해야 한다.
= 어떤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 아래에서 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 경쟁보다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착취해도 된다는 생각은 사람과 동물간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다분이 피터싱어다운 주장이다..)
= 약자, 빈자, 그리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곰곰히 연구해야 한다.



